울금(鬱金)의 원산지는 인도ㆍ중국ㆍ오키나와 등이다.
여기서 기운이 가벼워 막힌 기운인 울(鬱)을 뚫어주고 색이 황금색이란 이유로 울금(鬱金)이다. 울금(鬱金)은 오렌지색에 가깝고 매운맛이 쓴맛보다 더 강하다.
울금(鬱金)은 천옥금(川玉金)ㆍ심황(深黃) · 울금(蔚金) · 을금(乙金) · 걸금(乞金) · 천을금(川乙金) · 옥금(玉金) · 울금초(鬱金蕉) · 금모세(金母蛻) · 마술(馬蒁) 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황제족(皇帝足)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열대지방에선 왕족ㆍ귀족의 장수식품으로 통했다. 일본에선 오키나와산 울금(鬱金)인 ‘우콘’을 왕족만 먹는 전매품으로 지정해 일반인 대상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 울금(鬱金)으로 울창주(鬱鬯酒)를 담는데, 鬱金(울금)의 향을 넣은 鬱鬯酒(울창주)는 그 향기로 신을 강림하게 하였고, 울창주(鬱鬯酒)가 성지(聖地) 즉 성스러운 땅에 불양(祓禳) 즉 액(厄)을 방지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검은 기장(黒黍)으로 빚어 만들고 향초인 울금(鬱金)을 넣어 향기가 나게 한 향주(香酒)을 가리키며, 거주(秬鬯), 울주(鬯酒), 울창(鬱鬯)이라고도 한다.
상 (商, 기원전1600년경~기원전1046년경)나라에서는 약초를 넣어 기장으로 빚은 약주를 ‘창주’(鬯酒)라 불렀다. 주(周)나라 시대(기원전 1046~기원전 256년)의 관제를 기록한 ‘주례(周禮) 춘관(春官)’편은 기장으로 창주를 빚는 사람을 ‘창인(鬯人)’, 약초인 울금초(鬱金草)를 술에 섞는 사람을 ‘울인(鬱人)’이라 하는 등 직무를 구분해 불렀다.
조선시대의 종묘(宗廟), 경모궁(景慕宮), 육상궁(毓祥宮), 저경궁(儲慶宮)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인 납일(臘日) 등에 올리는 오향제(五享祭) 중 가을 제사와 겨울 제사에 사용되었다. 가을 제사에서는 밤에 거울로 달을 비춰 맺힌 이슬을 모아 만든 맑은 물이라고 하는 명수(明水)를 가이에 담고, 검은 기장에 울금향(鬱金香)을 넣어 빚은 향기 나는 술이라고 하는 울창주(鬱鬯酒)를 황이(黃彛)에 담았으며, 겨울 제사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황이(黃彛)에 명수를 담고, 가이(斝彝)에 울창주를 담았다.
왕세자 책봉식에도 울창주가 쓰이는데, 좋은 날을 맞아 종묘에 알현하고 울창주(鬱鬯酒)를 부어 조상을 계승하면서 너를 세워 왕세자로 삼는다. 아아, 하늘은 친한 데가 없이 오직 덕(德) 있는 자를 도와준다. 어질게 베풀어 만백성을 보살피는 대권을 받고, 검소하고 너그러워 나라의 경사가 넘치게 하라. 라고 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전라도(全羅道)편 약재(藥材) 중에 ‘심황[鬱金]’이 나오고,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서예가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 ~ 1682)의『기언(記言)』35권에 ‘강남(江南)에서는 닥나무〔楮〕, 옻, 매실〔梅〕, 석류〔榴〕, 왕골〔莞〕, 모시〔苧〕, 파초〔蕉〕, 생강〔薑〕, 수숫대〔穰〕, 연〔荷〕, 울금(鬱金)이 생산된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강남(江南)은 지금의 전주(全州)를 말하는 것으로 전주에서 울금(鬱金)이 생산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전주부 임실현(任實縣)에서 생산되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울금(鬱金)은 대개 한약재로 사용된다. 특유의 맛 때문에 울금 섭취를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어서다. 비릿한 음식에 넣으면 비린내가 사라진다. 식용으로는 주로 카레의 원료로 사용되며, 생울금(生鬱金)을 갈아서 찌개ㆍ생선구이 등에 넣으면 잡내가 제거된다. 과거엔 방충ㆍ살균 효과가 있는 울금(鬱金)을 옷ㆍ서화를 보관하는 보자기에 함께 넣기도 했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